정상 정복…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제4구간 조침령∼구룡령(21.25㎞)

영하 가까운 새벽 기온에 베테랑 대간꾼도 긴장한 모습 역력

전날 밤 창원에서 출발한 S&T중공업 백두대간 종주팀(이하 대간꾼)은 11일 오전 5시 30분 제4구간 출발지인 조침령에 도착했다. 출발 전 준비운동을 하며 바라본 새벽 하늘의 별은 도시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선명하고 초롱초롱했다.

이렇게 선명하고 영롱한 별빛은 난생처음이다. 마치 동화세상에 온듯한 착각까지 일으킨다. 까만 하늘에 보석을 뿌려놓았다는 말을 이럴 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명품 별빛'이었다. 백화점에서 많은 돈만 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명품이 아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진정한 명품이다.

영하에 가까운 기온에 베테랑 대간꾼도 몸을 움츠리는 등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새벽 식사를 하는 동안 산장 주인아저씨가 올해 처음으로 얼음이 얼었다고 전했다. 산장 마당에 세워둔 주인아저씨의 트럭 유리창에 내린 서리가 얼음으로 변했다.

여기가 38선과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조침령을 출발하는데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등산복 사이로 스미고 들어온다. 한참을 걸었지만 좀처럼 몸에 땀이 배지 않는다.

또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약간 에었다. 여기저기서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정상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고개를 오르다 여기쯤이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갈전곡봉(1204m)이겠지 생각하면서 여러 번 지도를 들여다 보았다. 지도를 봐도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주위의 동료에게 물어보자 지금 오르는 고개가 마지막이고 저기가 정상이라는 대답에 없던 힘이 절로 났다, 심호흡을 하고 아픈 다리에 힘을 더해본다. 힘들여 오른 정상(?), 그러나 속았다. 정상이 아니다. 눈앞에 또 봉우리가 나타났다. 눈앞의 정상에 오르려면 다시 언덕을 내려가서 또 올라야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했던가. 봉우리를 내려가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역시 고개를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하는 수 없이 잠시 쉴 수밖에 없다.

다시는 정상이냐고 묻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지만 위안과 희망을 얻고 싶었던지 동료 대간꾼에게 이제 정말 정상이겠죠! 하고 물어본다. 동료는 이제 진짜 정상이라고 확신을 보이며 답한다.

죽을 힘으로 또 오른다.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미안했던 동료는 '정상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이 에베레스트에서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지만, 백두대간을 오르며 실감하고 있다고 웃는다. 정말 온몸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동료의 선의 거짓말 때문에 여러 번 힘을 내며 정상을 오를 수 있었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단풍으로 물든 산 황홀함 가득

해발 770m 조침령을 출발해 몇 시간을 걸었지만 생각했던 백두대간의 장엄한 위용은 보이지 않는다. 발아래에는 산죽이 즐비하고 눈을 돌려도 특별한 것은 없다. 동네 뒷산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등이 고작이다.

능선을 따라 산길을 오르고 내려도 등산로 자체가 울창한 나무에 뒤덮여 쉽게 백두대간의 위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치고 같은 풍경이 계속되면서 지겹기까지 하다. 심지어 지금 귀신이나 여우에게 홀려 똑같은 산을 돌고 돌고 또 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속으로 웃음까지 나왔다.

그러기를 3∼4시간쯤 발아래에서 사그락사그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겨웠던 중에 들리는 소리, 별날 것도 없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바로 낙엽이 발에 밟히면서 나는 소리다. 길을 걸으며 한참을 생각한다.

이 소리를 사르락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사각사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니 새바스락새바스락 같기도 하고…. 참 듣기 좋았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곳곳에서 단풍이 저마다 사람의 눈을 끌고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저마다 더 아름답고 예쁜 색을 내기 위해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비록 고도가 높은 갈전곡봉 주변을 위주로 단풍이 물들어 있었지만 한 주만 지나면 이번 구간의 산은 온통 단풍으로 붉게 물들며 가을 산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할 듯하다.

#대자연은 편법을 용납하지 않는다

조침령을 출발해 쇠나드리까지는 1시간 30분이 족히 걸리는 구간이다. 하지만, 대간꾼은 이 구간을 고작 30여 분만에 주파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야간산행을 하다 보니 속도가 빨라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내달린 것이다.

2시간쯤 지났을까? 그다음 봉우리인 1146m를 오르는 순간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종주팀에 도움은 못줄망정 민폐는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다행히 종주팀 의료담당인 김현우 대원이 다리에 수지침을 놓고 테이핑을 하고 나니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30분쯤을 걸었을 때는 언제 쥐가 났었는지 모를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지면으로 인사를 전한다. '김현우 대원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힘들기는 매한가지. 이번 구간의 주봉인 갈전곡봉을 지나 종점인 구룡령까지는 4.2㎞. 다리 근육이 적응을 하니 이제는 무릎과 발목이 아파져 온다. 4.2㎞ 거리지만 평균 고도는 1000m, 정확하게 5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마음속에서는 5개의 고개를 꼭 넘을 필요가 있을까 산 허리를 돌아가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산 허리 길도 없었고 모든 산의 정상을 오르고 내려야만 했다.

우스갯소리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은 정말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자, 종주팀 가운데 한 대원이 "백두대간을 지나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산을 정복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백두대간을 담아 가려는 것이며, 그래서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산 허리를 돌아갈 정도의 편법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백두대간에 오지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요행을 바라고 편한 것을 찾았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제4구간 21.25㎞를 무사히 마친 S&T중공업 백두대간 종주팀은 부끄럽지 않은 대간꾼이었다.